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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동행 2010년 6월호》
친구가 전화를 걸어 자기 어머니의 변화에 대해 불평했다. 평생 입버릇처럼 “종교없이 살다가 다 늙어서 교회나 절에 매달리는 것만큼 웃긴 게 없다.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말하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성당에 나가기 시작해 독실한 신자로 변신했다고 한다. 또한, “강아지 예쁘다고 옷 입혀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꼴보기 싫은 것 없다. 난 절대 안 그래야지.” 그러던 어머니가 우연히 들인 시추 한 마리를 자식처럼 끔찍이 여긴다고 했다. 물론 옷도 입히고. 누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까.
“너 아직 살아있구나? 서른 살 되기 전에 죽어 버리겠다고 하더니….” 내가 중학교 때 했다는 이 말을 친구들이 말할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서른이란 오히려 예순 살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지는 죄악의 나이였다. 청춘의 끝이자 인생의 끝이여. 인생의 완성을 서른 살쯤에 맞춰 두고 있었다. 승부란 때로 한 합이 아니라 수십, 수백의 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예 승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대학교수 좋지. 여자 직업으로 그 이상 가기 힘들 거다.”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박사과정 학생 중 가장 어린 축이었는데 결국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대학교수 말고 부잣집 마나님 해라. 사는 게 뭐 있냐?” 부모님의 격려에 힘입어 선으로 만난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려 했는데 일이 꼬여 잘 안되고 말았다. 슬픔을 담아 쓴 원고가 당선,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여섯 권의 책을 냈는데, 그로 인해 얻은 수입은 파키스탄의 신발 공장에서 일하는 7세 노동자의 그것보다 나을 게 없다. 생활비 싼 곳을 찾아 강원도 산골에 들어와 닭과 개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행복하냐고? YES.
'결코' 라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겠다.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보봐르의《인간은 모두 죽는다》에서 보듯, 한 인간의 인생이 의미를 갖는 것은 언젠가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춘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어리석은 누군가의 경우, 심지어 청춘이 완전히 끝난 뒤에야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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