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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동행 소리잡지 - '결코'라고 말하지 않기, 진심은 지구도 움직인다

    이두경외 2011.07.29 1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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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동행 2010년 6월호》

    친구가 전화를 걸어 자기 어머니의 변화에 대해 불평했다. 평생 입버릇처럼 “종교없이 살다가 다 늙어서 교회나 절에 매달리는 것만큼 웃긴 게 없다.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말하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성당에 나가기 시작해 독실한 신자로 변신했다고 한다. 또한, “강아지 예쁘다고 옷 입혀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꼴보기 싫은 것 없다. 난 절대 안 그래야지.” 그러던 어머니가 우연히 들인 시추 한 마리를 자식처럼 끔찍이 여긴다고 했다. 물론 옷도 입히고. 누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까.

    “너 아직 살아있구나? 서른 살 되기 전에 죽어 버리겠다고 하더니….”
    내가 중학교 때 했다는 이 말을 친구들이 말할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서른이란 오히려 예순 살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지는 죄악의 나이였다. 청춘의 끝이자 인생의 끝이여. 인생의 완성을 서른 살쯤에 맞춰 두고 있었다. 승부란 때로 한 합이 아니라 수십, 수백의 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예 승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대학교수 좋지. 여자 직업으로 그 이상 가기 힘들 거다.”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박사과정 학생 중 가장 어린 축이었는데 결국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대학교수 말고 부잣집 마나님 해라. 사는 게 뭐 있냐?”
    부모님의 격려에 힘입어 선으로 만난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려 했는데 일이 꼬여 잘 안되고 말았다. 슬픔을 담아 쓴 원고가 당선,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여섯 권의 책을 냈는데, 그로 인해 얻은 수입은 파키스탄의 신발 공장에서 일하는 7세 노동자의 그것보다 나을 게 없다. 생활비 싼 곳을 찾아 강원도 산골에 들어와 닭과 개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행복하냐고? YES.

    '결코' 라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겠다.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보봐르의《인간은 모두 죽는다》에서 보듯, 한 인간의 인생이 의미를 갖는 것은 언젠가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춘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어리석은 누군가의 경우, 심지어 청춘이 완전히 끝난 뒤에야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느껴지기도 한다.

     


    《행복한동행 2008년 6월호》

    올 초 개그맨 공채시험을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잘할 수 있을까? 웃기지도 못하고 망신이나 당하는 거 아니야?' 포기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대로 도망치면 내내 겁쟁이라는 자괴감에 빠질까 봐 용기를 내 거리로 나갔다.

    내가 자신감과 용기를 얻기 위해 택한 방법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악수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꽃무늬 옷을 빌려 입고 무작정 거리로 나가'당신의 악수를 부탁드립니다.'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 손을 선뜻 받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덤덤함 표정으로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니 뻔뻔함의 내공이 웬만큼 쌓였다고 자부했던 나도 점점 위축이 됐다.

    한껏 쪼그라든 심정으로 이쯤에서 그만둘까 생각해 보았지만, 멀찍이 떨어져 내 퍼포먼스를 촬영해 주고 있는 친구 녀석에게 미안해서라도 선뜻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 기획의 부실함을 자책하며 고집인양 발악인양 그날 하루 지하철, 길거리, 상점가 등지에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발이 부르트고 손이 저렸다.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손오공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착한 기운을 모아 거대한 '원기옥'을 만들어 냈을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때부터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무턱대고 악수를 청하는 대신, 웃으면서 “악수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요구가 참여로 바뀌자 손을 잡아 주는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힘내요.” “열정이 부럽네!” “손이 따뜻해서 오늘 하루 저도 힘이 날 거 같아요.”

    그들 역시 지쳐있었던 건 아닐까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면서 악수가 서로의 지친 마음을 달래고 소통하게 한 매개체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나는 결국 시험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 얻은 용기와 기쁨으로 내 안에는 또 다른 퍼포먼스를 구상하고픈 열정이 가득했다. UCC에서 화제가 된 '행복한 슈퍼맨' 이벤트도, 프리 세배 운동이나 지하철 두 줄 서기 운동 등도 그렇게 탄생했다. 내 목표는 그저 웃기는 것을 넘어 세상을 진동시킬 만한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 되는 것이다. 진심으로 원하면 지구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진정한 개그 1인자가 되는 그날까지, 나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