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시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갔다가 발길을 붙들던 달콤한 향에 발길이 멈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에 한없이 기쁨을 감출 수 없을 때가 생각났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더 늦기 전에 그곳에 다시 갔었는데 열흘 전과는 다르게 그 달콤한 향이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이유일까 싶어 나무를 올려다보니 다른 나무들과 다르게 잎을 거의 다 떨구어내어 남아
있는 잎이 몇 없었다. 주위에 떨어진 잎들을 주워 모으니 지나는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에 떨어진 잎들을 한 움큼 모아서 가방에 넣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향기를 다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될 수 있으면 많이 모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지난주보다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이 한없이 예쁘기만 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예쁘게
물든 나뭇잎들을 보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감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갈수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짧은 기간 동안 보여주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나무들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에게서 1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사람이 몇 년을 살아가는 세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세상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 삶에서 때로는 삶의 고삐를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의미를 잃어버린 채 살아온 세월도 나에게는 값진 경험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때로는 1년이라는 시간은 거칠고 힘든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고통스럽기만
할 때도 있었다. 아직 나 자신이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떨 때는 한없이
외롭기만 했던 시간도 있었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었던 날들을 살 때는 외롭고 아픔뿐인
삶이라면 인생이 짧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세상이 어지럽기만 하고 똑바로 설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랬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아가는
요즘 내 심장이 어느 때보다 더 두근거림을 느끼게 된다.
며칠 전에는 내 가슴이 한없이 아플 때가 있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저리고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느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픔은 더해갔다. 이렇게 내 가슴이
아팠던 것은 살아오면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병이 들어 아픈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에 사실
목 놓아 더 울고 싶었지만 나는 참아야 했다. 아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서러워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가슴이 아파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나온 눈물이었지만,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고 행복해서 나는 눈물이었다. 내 생애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갈수록 생각의 깊이와 폭이 더해지고 미래에 내가 서 있을 자리를 상상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그 시기와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지나온 세월은 전혀 내보일 것 없는 한없이 작고
초라한 삶이었지만, 앞으로 남아 있는 인생은 잔뜩 움츠렸던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고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더 키우려 한다. 지금은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나는 늘
자신을 다독이며 올바른 삶의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게 변함없는 노력을 계속하려 한다. 조금
늦는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으며 절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의미 부여를 한 소중한 시간
중에서도 이번 가을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날들이 될 것이고 이 느낌을 살려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함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아픔까지도 사랑으로 담아내련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고, 모든 것 다 이겨내면서 사랑하며 살아가련다.
2012. 10. 27 비꽃(瑜眞 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