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할아버지
“…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ET 할아버지'로 불리며 불꽃처럼 살다 2006년 12월 세상을 떠난 대안 교육가 채규철 선생이 세상을 향해 남긴 마지막 인사다. 'ET 할아버지'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외계인 같다며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타 버린 사람'이라며 자신의 별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1961년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 학교에서 교사직을 시작한 그는 장기려 박사와 함께 '청십자 의료조합'을 설립하면서부터 복지운동가로 활약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차가 불길에 휩싸이며 3도 화상을 입었다. 30여 차례의 수술을 거쳐 목숨은 건졌지만 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코와 입도 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깊은 수렁을 빠져나왔다. 비록 청력을 잃고, 한 눈은 멀고, 녹아내린 손은 갈퀴처럼 돼 버렸지만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마음을 보고, 귀는 안경을 걸칠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음으로 상처를 덮었다.
그리고 다시 청십자 의료조합 일을 시작했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벗회',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를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86년, 경기도 가평에 대안학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우며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험난한 역경을 딛고 일어나 '이미 타 버린 몸'에서 나오는 열정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삶에는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해라).' 만약 사고가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에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먼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