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의 처세에 대하여.....

    전원주 2010.07.02 6179

  • 며칠 째 비가 내리고 있다.
    여기저기서 물난리가 나고 하늘은 구멍 뚫린 듯이 쏟아 붇는다.
    세상이 습기로 가득하다.
    장마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며칠 째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 때도 있다.
    비유컨대 이런 날은 어둠이 밝음을 삼켜버린 때라 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이런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밝은 기운이 하늘로 뻗지 못하고 어둠에 갇혀있는 시기를 주역에서는 ‘명이(明夷)’ 로 표현한다.
    즉 ‘밝음이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어떤 날, 혹은 어떤 시기는 특별히 고달플 때가 있다.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고, 작은 실수도 크게 확대되어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잘한 일도 칭찬을 받지 못하게 일이 꼬이는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어느 날 하루 동안 예매한 기차를 두 번이나 놓친 적이 있다.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미리 구입해 두었다.
    집을 나오다 잠시 문을 열어 두었는데, 그 사이에 개가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 놈을 다시 붙잡아 두고 급히 서둘러 역으로 갔지만 차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그 날 따라 나는 역에서 탑승권을 교환하지 않고 직접 탈 수 있는 홈티켓을 발매해 두었는데 이건 전화로 취소할 수가 없다.
    역에 도착하여 다음 기차로 표를 바꾸면서 출발 직전에 표를 취소할 때 부과되는 30%의 취소 벌금을 물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기차를 놓치게 되었다.
    기차역 까지 대략 1 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를 남겨 두고 여유 있게 출발을 했지만 길은 사정 없이 막히고, 그나마 몇 번 가본 길인데도 엉뚱한 길로 접어들면서 더욱 일이 꼬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기차를 놓칠래야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결국 그것도 출발 직전에 놓치고 말았다.
    또 30 %의 취소 벌금을 내고 다음 차표로 바꾸었다.
    대합실에서 지루하게 다음 차를 기다리면서 화가 났다.
    그러다가 참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고 웃었다.

     

    문득 한 야사 속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태종 이방원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 앉아 있을 때의 이야기라고 들었다.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태종은 상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효자인 세종은 태종의 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어느 날 태종이 궁내를 거닐다가 우연히 두 사람의 신하가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운이라는 것이 있어 임금조차도 그것을 넘어 설 수 없다 했고, 또 한 사람은 임금은 이미 하늘의 뜻을 받은 사람이니 운도 임금의 의지에는 결국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태종은 이 사람을 기특히 여겨 다음 날 따로 불러 세종에게 보내는 서찰 하나를 전달하게 했다.
    그 서찰에는 ‘편지를 가져가는 자의 직급을 하나 올려 주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며칠 뒤 태종은 그 사람의 직급이 올랐는 지 확인했다.
    자신이 아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즐기는 것이 그의 기쁨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직급이 오른 사람은 엉뚱하게 ‘임금이라도 운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던 신하였다.
    어찌된 일인지 까닭을 알아본 결과 서찰을 가지고 가던 신하는 도중 갑자기 곽란이 나 몸을 가눌 수 없이 아팠고, 그 때 마침 논쟁을 하던 신하가 그 곁을 지나고 있어 그에게 서찰을 대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도 운을 따라야 한다‘는 신하가 이긴 셈이다.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운이 좋은 날이 있고 이상하게 꼬이는 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종종 꽤 오랜 기간 동안 행운이 우리를 도와주는 때도 있고 불운이 우리를 지배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장마처럼 어둡고 음습하고 되는 일 하나 없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만일 그런 시기를 맞는다면 그때에 적절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있지는 않을까?
    몇 가지 방법이 있어 정리해 두고 종종 마음으로 익혀 연습해 보고 있다.

     

    주역에서는 운이 막히는 날을 여러 가지로 비유한다.
    힘차게 하늘을 날던 새가 갑자기 날개질을 멈추고 중간에 날개를 접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또는 우연히 커다란 공을 세웠는데, 오히려 주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모양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재수 옴 붙은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이렇게 하자.

     

    첫째는 이런 시기라는 감이 오면 재빨리 멀리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즉 일을 벌리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다.
    이런 때는 일이 잘되더라도 보상이 없고, 오히려 일이 꼬여 당연한 공조차 인정받기 어렵다.
    다행이 운이 나쁠 때는 줄행랑을 놓게 되면 그것으로 피할 수 있다.
    주역에서는 ‘운이 나빠 왼쪽 허벅지에 화살을 맞았지만, 말이 건장하니 타고 빨리 피하면 좋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는 어렵지만 도망갈 곳은 있다는 것이 바로 위안이며 또 한 때를 사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일부러 운을 시험하지 말고, 고집을 부리지도 말고, 밀어붙이면 끝내는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현명치 못하다.
    의지력을 시험해 볼 필요도 없다.
    이때는 잠시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웃어주는 것이 좋다.

    도주, 이것은 인생으로부터 어쩔 수 없는 것을 느꼈을 때 취할 수 있는 중요한 배움이다.
    병법가들은 일찍이 이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겸손하라는 경고일 것이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던 서두를 필요가 없다.
    서둘러 도망 갈 곳도 없고, 도망갈 형편도 못되는 경우에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면 된다.
    일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때가 있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성취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유 없는 ’can do sprit’ 으로 무장할 필요가 없다.
    이뤄서 빛나는 때가 있고 이뤄서 일을 망치는 때가 있다.

    기다림, 이것 또한 운이 막혀 폐색되었을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그런데 운이 꼭 막힌 ‘명이’의 시기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살짝 막힌 어려움이어서 한 발만 더 내 딛으며 훌륭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시기인지, 운이 아주 꽉 막힌 시기여서 잠시 피하고 기다려야하는 근신과 겸손의 시기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것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 부른다.
    현명한 사람은 결국 끝이 좋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결국 끝에 후회하게 된다.

    주역의 본문 마지막 구절은 ‘불명 회 초등우천 후입우지’ (不明 晦 初登于天 後入于地)
    즉, ‘현명하지 못하면 후회하기 마련이니 처음에는 하늘로 오르는 듯 하다 이내 추락하여 땅에 처박히게 된다‘ 는 뜻이다.

    현명함은 설명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물러섬은 탐욕스러운 자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현명함은 반드시 마음을 비우고 순수해 져야 얻게 되는 지혜임이 틀림없다.

     

                                    <어디서 읽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