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서 보내는 귀농편지-두번째 편지 : 우여곡절 속에 작은 감타래장을 짓다!
팔월에 조그만 감타래장(곶감건조장)을 완공했습니다. 이 타래장을 짓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농촌에서 무엇을 하려할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 주의할 필요가 있어 글로 남겨봅니다.
곶감은 원래 홍시가 되기 전 단단하게 익은 감을 따다가 깍아서 걸어 말리는 것이다. 만약 그냥 탈수만 시킨다면 곶감이 아닌 말린 감이 되는 것이다. 깍아걸어두면 숙성이 되어(익어서) 홍시 단계를 거치게 되고 서서히 자연바람에 의해 탈수가 되어 적절하게 젤리상태가 되면 우리가 곶감이라고 하는 맛있는 전통음식이 되는 것이다.
곶감은 숙성과 탈수의 함수관계가 맞아떨어져야 좋은 곶감이 된다. 숙성이 지나치고 탈수가 적으면 너무 익어 꼭지에서 빠지게 된다. 반면 숙성이 약하고 탈수가 심하면 곶감의 당도가 떨어지고 말린감에 가깝게 된다.
그러므로 밤낮의 온도차이가 심하고 건조하되 바람이 잘 부는 백두대간 자락이 곶감이 잘되는 곳이다. 예로부터 상주, 산청 등이 곶감으로 유명한 것은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애초 계획해온대로 감타래장을 짓기로 하고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마을에서 가장 바람이 잘 불고 축사와 멀리 떨어졌으며 바람 부는 방향으로 오염원이 없는 곳을 찾아보는 중 마침 집 바로 위 언덕 같이 생긴 집뒷산이 있는데 그곳 산등성이였다.
남의 땅인지라 매매나 임대를 알아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종중 땅이라 하여 매매는 될 수 없다고 한다. 종손이라는 사람은 임대를 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한동안 소문만 내고 있던 중 마침 마을 어른 한분이 중개를 해주어서 거짓말처럼 계약이 되었다.
그러나 계약 속사정을 보면 알고 당하는 것이 많다. 산위 칠팔십평 정도 밭인데 지금 밭부치는 할머니는 일년 임대료를 농사 끝나고 수확물을 조금 주는 정도다. 돈으로 환산하면 몇만원 정도 될까? 나는 일년 세로 팔십키로 쌀 두가마니(약 삼십만원)에 계약을 했다. 열배나 더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장을 찍었다.
절대금액은 적지만 마음은 황당하고 찝찝했다. 자기들끼리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세가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비난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마을주민이 아니라, 원주민들이 함부로 가격을 부를 수 있는 외지인이었던 셈이었다. 그동안 마을행사 때 부조하고 마을청소할 때 빗자루 들고 나간 게 몇 번인데 나한테 이렇게 대한다 말인가!
한편으로 스스로 위로도 해본다. 어떻게 생각하면 임대계약을 해줬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시골에서는 외지인에게 절대 땅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시설업자를 알아보았다. 선정 후 현장에 와서 살펴보고 감타래장 설치구조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다. 견적도 나오고 시공에 대한 의견도 보았다. 마지막 시공계약만 남았는데 문제가 터졌다. 땅을 부치고 있는 할머니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니가 내땅을 뺏어갈라꼬! 내가 니네 집에 가서 드러누울거여!”
“모친요. 제가 뺏는게 아니고요. 땅주인하고 정식으로 임대계약을 했는데요.”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비키나바라!”
“......”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땅 도지를 주는 건 땅주인맘이지 뭔소리냐’ 언덕산 너머 마을에서는 ‘귀농한 젊은 양반이 나이 많은 할매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부치는 땅을 뺏어먹냐’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내 스스로 자진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계약금 등을 날리게 되었지만 또 한 과목 수업료를 지불했거니 생각하기로 하고 마음을 비웠다.
사실 내가 생각이 깊지 못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힘들게 땅을 부쳐먹는 것을 헤아렸다면 아무리 내가 필요한 땅이라해도 애초에 마음을 비웠어야 했다. 별 생각없이 도시생활 사고방식대로 한 것인데 이것이 시골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집안 빈터에 미니 감타래장을 지었다. 이 집은 내돈 주고 산 집이기 때문에 말썽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