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감을 따게 되었다. 하지만 수확율은 5%가 못되는 것 같다. 95% 이상이 빠져버린 것이다.
보통 감나무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올해는 휑하니 썰렁하다. 그래도 이왕지사 감타래장도 지었으니 남은 감이라도 달달 긁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따다보니 감이 좀 이상하다. 절반 이상이 덜 익어 꼭지 부분이 파랗다. 하릴없이 마을어른에게 물어보았다.
"어르신요. 감이 아직도 꼭지가 새파란게 완전히 안 익은 것 같은데요."
"아, 그거 올해는 꽃도 늦게 피고 일조량도 모자라 다 익을라모 한참 걸릴낀디... 아마 일주일은 더 지나야 될낀데..."
"아예 그렇습니꺼!"
익은 감만 따보니 딸 감의 절반도 못되는 것 같다. 잘 익은 감이 좋은 곶감이 된다 하기에 나머지는 익은 후에 따기로 했다.
감이 안 익은 이 사건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주 일대의 모든 둥시(곶감용감) 감나무밭이 똑같은 상황이었다. 올해 상주일대 둥시감 평균생산량은 50%이거나 그 이하라고 한다. 공판장에서는 작년의 딱 두배로 가격이 형성되었다.
감따기를 늦추기로 하고 딴 감은 깍아걸었다. 그리고 사오일 후 마침내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10월26일밤 27일새벽에 시작된 된서리가 이틀 연달아내린 것이다. 상주의 첫서리는 기상청 통계로 11월 2~3일 경이라고 한다. 그러니 설마했고 오더라도 약한 서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상주일대의 감농장이 아침이 되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약한 서리가 아니라 실제로는 된서리가 내려 생감농사 고수부터 하수까지 일거에 다 날아가버렸다. 낙과율에 이은 이번 동해로 또한번 농장주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농장에 가서 감을 살펴보니 작은 것은 통째로 얼었고 큰 것은 꼭지쪽부터 삼분의 일 가량 얼었다. 결국 안 따고 남은 감 전부 다 얼은 것이다. 사람이 동상이 걸리면 진물이 나면서 썩어들어간다더니 감도 마찬가지였다. 녹고 하루이틀 지나니 진물이 나고 물러빠지기 시작했다.
또 하릴없이 감농장이 있는 동네 어르신에게 물어보았다.
"어르신요. 감이 다 얼었는데요. 이것도 깍아걸면 곶감이 될까요."
"얼은감은 곶감으로 못 쓰는거여. 말리면 새까매지고 정상적인 홍시과정을 못거치기 때문에 당도도 엉망이지. 아마 상품으로 팔기 힘들껄."
김이 팍 샜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깍아걸 감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언감도 따서 깍았다. 나뿐만아니라 대부분의 감타래장도 덜 언감을 골라 깍아걸었다. 감 자체가 너무 없기 때문에 얼었거나말았거나 깍아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상주 일대의 곶감건조장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의 감타래장이 감을 다채우지 못했다. 감값이 너무 비싸 다 채울만큼 살 엄두가 안난 것이다. 둥시감이 모자라 반시(청도일대나 더 남쪽의 납작감-올해는 반시농사가 잘 되었다고 함. 원래 상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를 깍아걸기도 하고 또 원래 알이 너무 커서 말리기 곤란한 대봉(홍시로 먹는감)도 깍아걸기도 했다.
한마디로 상주곶감 생산지에서 별 희안한 일이 다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집 감타래장을 쳐다보면 기가차서 한숨이 난다. 수확도 별볼일 없는데다 얼어서 버린 감도 많았다. 미니 감타래장을 다 채우는 것은 고사하고 타래장 안쪽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뎅그라니 매달려 있다. 그나마 절반 이상은 얼은감!
아! 정말 설상가상이다. 살다보니 별 희안한 일도 다 겪는다. 귀농 첫해에 이 왠 날벼락이람!
만약 산쪽으로 계약을 하지 않고 낙동강 일대 따뜻한 평지쪽으로 감나무 도지를 얻었더라면 왕대박 떼돈을 벌었을텐데... 왜 방향이 꺼꾸로 되었을까?
처음 상주에 왔을 때 농부들이 하던 말이 우뢰처럼 귓전을 때린다.
ㅡ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여! ㅡ
그렇다. 이것이 절대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