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판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최근 서울 집값이 과열 조짐을 보인다는 진단과 함께 고강도 단속에 들어갔다. 지난해 부동산 규제 종합세트라 불린 8·2 대책이 나온 지 1년여 만에 다시 투기세력을 향한 '엄중 경고'에 나선 것이다.
국토부·서울시, 실거래 집중 조사
서울 아파트값 4주째 오름폭 확대
"집값 불안 시 투기지역 추가 검토"
동작·동대문·종로구 '사정권'
전문가 '언 발에 오줌 누기' 지적
국토교통부는 오는 13일부터 서울 전역(25개 구)에서 주택매매 거래에 대한 자금조달계획서 등 실거래 신고내용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고 9일 밝혔다. 여기엔 국토부뿐 아니라 서울시·국세청·관할 구청·한국감정원 등이 총동원된다. 조사팀은 6월 이후 실거래 신고분 중 업·다운계약(실거래가를 높이거나 낮춰 신고)과 편법 증여, 분양권 불법 전매 등 불법거래 행위를 살핀다. 김복환 국토부 토지정책과장은 "조사대상 전원에게 통장 사본과 입·출금표, 현금조성 증명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소명자료가 불분명할 경우 출석조사까지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지난 7일부터 강남·용산구 일대 중개업소를 돌면서 불법 중개 행위를 단속 중이고, 20일부터 두 달간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 대한 점검에 나선다. 아파트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논란이 된 곳을 대상으로 조합 운영실태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준수 여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7일 오후 정부 단속으로 문을 닫은 서울 용산구의 한 중개업소. [연합뉴스]
정부의 이런 대응엔 각종 규제에도 뜀박질하는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18% 올라 4주 연속 상승 폭이 커졌다. 용산·여의도 개발 기대감에 용산구와 영등포구 아파트값이 전주보다 0.29%씩 상승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일부 단지는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초 12억원 전후였던 여의도 목화 전용 89㎡가 14억원에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8·2 대책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정부가 각종 규제를 꺼내 들었는데도 집값을 잡지 못하자,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시장 겁주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강도 단속조차 통하지 않으면 다음 카드는 '추가 규제'다. 국토부는 "집값 불안이 이어지면 투기지역 등을 추가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은 이미 전역이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고, 이 중 강남권 등 11개 구는 투기지역까지 '3중 족쇄'가 채워져 있다. 이 때문에 비투기지역인 14개 구 중 어느 곳이 투기지역으로 묶일지에 관심이 쏠린다.
투기지역 지정은 직전 달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1.3배가 넘는 곳 중 직전 2개월 평균 집값 상승률이 같은 기간 전국 집값 상승률의 1.3배가 넘거나, 직전 1년간 집값 상승률이 직전 3년간 평균 전국 집값 상승률보다 높은 경우가 1차 검토 대상이다. 이를 고려할 때 동작·동대문·종로구 등이 사정권이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0.2%인데, 같은 기간 이들 지역 집값은 0.5% 이상 올랐다. 또 6~7월 평균 집값 상승률도 1% 전후로, 직전 2개월 전국 집값 변동률(-0.04%)을 크게 웃돈다.
그 외 정부가 쓸 수 있는 규제 카드로 재건축 가능 연한(현행 준공 후 30년) 연장과 재건축 시 임대주택 건설 비율 상향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추가 규제 역시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일시적인 '약발'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수요가 살아있는 한 결국 집값은 뛸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 정부의 부동산 불법거래 단속 등은 1년여 전부터 진행됐던 조치였고 그 후 수요 억제책이 잇따랐지만, 서울 집값을 잡진 못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차이는 대출 건수 제한 정도뿐이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서울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그만큼 수요가 많아선데, 정부가 이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난 1년간 시장 흐름이 보여줬듯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서울은 수요 대비 부족한 주택 공급을 늘려 수요를 분산시켜야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